국회전자도서관 검색창에 '팔경'이라고 치면 170여건의 검색결과가 나옵니다. 여러 학자들이 팔경에 관하여 연구한 다양한 문헌들입니다. 학과도 어문학, 역사학, 지리학, 조경학, 그리고 학제적 연구 등 다양합니다. 물론 이러한 연구들은 관련 학자들의 연구 배경이나 목적, 접근 방법 등에 따라 더 세분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몇몇 논문들을 복사해서 대강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존재는 일정한 제한을 받습니다. 인간과 공간과 시간의 합작품의 하나인 팔경의 존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팔경의 모습은 시대와 지역, 그리고 표현하는 주체에 따라 여러가지 형식과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어느 지역의 빼어난 경관은 선정 주체에 따라 100경, 33경, 12경, 10경, 9경, 6경, 4경, 3경 등으로 선정된답니다. 물론 8경은 그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8경인가?' 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날 '팔경'이라는 단어는 여덟 곳의 경관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이라는 의미가 더 우세하기 때문이랍니다. 인문성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현대인의 성향 때문으로 보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강산도 변하고 자연경관에 대한 인간의 특정한 인식체계의 하나인 팔경도 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팔경에 관한 연구들은 팔경을 전통과 현대의 이분 구도에 따라 전통 팔경과 현대 팔경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둘을 칼로 두부 자르듯 딱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전통은 현대가 될 수 있고 또 현대가 전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련 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도 시대와 관심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승경(勝景)이나 풍경에서 경관으로, 역사문화 자원에서 경관자원으로, 팔경의 해석이나 계승에서 선정이나 활용 등으로 표현이 바뀌는 것이 그것입니다.
전통 팔경은 어느 지역의 팔경이 예로부터 전래되어 오는 경우를 말합니다. 즉, 옛 문헌에 그림이나 시 등으로 확실히 근거하는 경우와 확실한 원전은 없어도 오래 전부터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경우입니다. 널리 알려진 관동팔경이나 단양팔경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전통 팔경의 표현 주체는 주로 어느 개인이나 지역 주민들로 보입니다. 팔경 연구자들은 이 경우 팔경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함의를 추적하는 연구를 주로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팔경은 대강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자방자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5년 이후 각 지자체들이 대외 이미지 제고나 관광홍보 등의 목적으로 선정한 팔경을 가리킵니다. 즉, 기존의 팔경이 존재하더라도 유명무실하거나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새롭게 제2의 팔경을 선정하는 경우와 전해져 오는 팔경이 없어 처음부터 새로 선정하는 경우 등을 말합니다. 현대 팔경의 선정 주체는 주로 지자체인 시, 군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에 팔경 연구자들은 기존의 문화지리학적 경관연구와는 달리 선정된 실제 경관이 지니는 물리적 경관 요소의 파악에 애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이른바 현대 팔경에 관한 논문들 중에서 몇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어 가면서 지역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고유 이미지를 찾아내는 작업에 고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의 하나로 옛 조상들의 지혜를 빌어 그 지역의 대표적인 경관자원인 팔경을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김종하, 배현미, 2006).
활용방법으로 가장 많았던 것이 인터넷을 통한 안내, 도로 안내판의 설치, 상품 제작, 행사/축제에 활용, 사진전 개최, 안내 책자 등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현대 팔경을 대상으로 상품 제작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편엽서, 접시, 액자, 손수건과 같이 간단한 기념품을 일부 지자체에서 제작하여 판매, 선물용으로 활용하고 있었다(앞의 논문).
최근 들어 각 지방정부는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팔경을 새로이 선정하거나 과거의 팔경을 바꾸고 있다. 여기서 팔경은 경관의 상징화와 상품화를 통해 장소(혹은 경관) 그 자체가 장소마케팅을 위해 동원되는 문화관광상품의 한 유형인 것이다(송민정, 손일, 2011).
팔경과 장소마케팅과의 관련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경 선정 및 상품화가 지역발전에 얼마만큼 기여할 것인가' 라는 실천적 물음에 앞서, '각 지방정부가 선정한 여덟 곳의 경관이 그 지역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관평가와 경관선정에 어떤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있을까?' 등의 선험적 의문이 선결되어야 한다(앞의 논문).
이러한 팔경은 시민, 군민 그리고 관광객의 의견을 반영하여 선정되었는데, 우편과 인터넷 등을 통한 설문조사 과정을 거쳤거나, 팔경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어러 번의 회의를 거쳐 팔경을 선정한 곳도 있다. 따라서 팔경에 속하는 경관들은 평가에 있어 집단적 합의를 거친 경관이라 말할 수 있다... 팔경으로 선정된 경관들을 비교, 분석하기 위한 조망정보로서 조망점, 조망대상, 조망행위를 선정하였다. 이들 정보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망점의 정확한 위치, 구체적인 조망대상, 그리고 조망행위의 정량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앞의 논문).
앞에서 인용한 논문을 포함하여 그 논문에서 참고한 문헌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송민정, 손일, 2011, "현대 팔경에 대한 경관분석: 경상남도 12개 시,군을 대상으로"
김종하, 배현미, 2006, "현대 팔경의 선정 특성에 따른 활용실태에 관한 연구"
주신하, 임승빈, 2003, "도시경관 분석을 위한 경관형용사 목록 작성"
강영조, 배미경, 2002,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조망행동: 진경산수화 100엽을 대상으로"
신상섭, 노재현, 1999, "경관정체성 향상을 위한 전주팔경의 해석에 관한 연구"
강영조, 김영란, 1991, "한국 팔경의 형식과 입지 특성에 관한 연구"
3.
위에서 현대 팔경의 선정 주체와 목적, 기준과 방법, 그리고 할용 방법 등에 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 청산팔경은 전통 팔경일까요, 현대 팔경일까요? 선정 주체와 최근에 다시 선정되었다는 측면에서는 현대 팔경의 요소도 있지만, 크게 보면 전해져 오는 청산팔경을 재해석했다는 측면에서 전통 팔경의 성격이 강하다고 봅니다.
우리 청산팔경의 경우, 이른바 '원전찾기'로 대표되는 고증의 문제와는 별도로, 대표성과 공공성의 확보에 유리한 공공기관이 주체가 되어 새롭게 해석되거나 선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어느 개인이 청산팔경을 새롭게 노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20여년의 경향은 팔경 선정의 공공성과 객관성 측면에서 주로 공공기관이나 단체가 선정 주체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13년 2월의 '청산팔경 정해 심의위원회'의 노력은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의미있는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청산도(2001)'의 자료 ▲청산팔경 정해 심의위원회(2013.2)의 결론
4.
이렇게 선정된 청산팔경을 대상으로 앞에서 언급한 송민정, 손일(2011)의 경관분석의 틀을 빌어 잠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그 연구에서는 장소자산으로서 경관속성을 크게 조망 속성, 체험 속성, 인문 속성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속성유무에 따라 조망형 팔경, 체험형 팔경, 인문형 팔경으로 나누웠습니다. 그리고 조망형의 경우 조망정보로서 조망점, 조망대상, 조망행위를 선정하여 팔경으로 선정된 경관들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선정된 청산팔경의 경우, 대부분이 조망형이고 대봉연사는 체험형, 고성귀운은 인문형이자 조망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망형으로 분류된 경우에는 조망점, 조망대상, 조망행위 등이 분석의 대상이 됩니다. 쉽게 말하면 어느 경관을 담은 사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누가 어디에서(조망점) 무엇을(조망대상) 어떻게 찍느냐(조망행위)의 문제입니다. 논쟁이 되었던 오산낙조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어디에서 바라본 어떤 풍경이냐? 즉, 오산에서 바라본 모도의 낙조 풍경이냐, 아니면 상서리 쯤에서 바라본 오산의 낙조 풍경이냐? 정확한 조망점의 위치와 구체적인 조망대상 등이 분석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전해져 오는 청산팔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였던 청산도넷의 김작가님의 활동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http://www.cheongsando.net 의 '청산팔경' 메뉴 참조).
5.
이번에는 선정된 청산팔경의 활용방법에 관한 것을 살펴 보겠습니다. 김종하, 배현미(2006)의 연구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지자체의 팔경 활용방법으로 가장 많았던 것이 인터넷을 통한 안내, 도로 안내판의 설치, 상품 제작, 행사/축제에 활용, 사진전 개최, 안내 책자 등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청산팔경의 경우에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 청산도의 경우 이미 '가고싶은 섬 시범사업 추진위원회'가 설립, 운영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업 중에서 '등산로(1-A, 1-B, 2, 3 코스)'와 '슬로길(11코스 17길 100리)'이 정립되어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http://www.chungsando.co.kr 의 '청산도 관광안내도' 참조). 여기서 슬로길 11코스 17길은, 1코스 미항길, 동구정길, 서편제길, 화랑포길; 2코스 사랑길; 3코스 고인돌길; 4코스 낭길; 5코스 범바위길, 용길; 6코스 구들장길, 다랭이길; 7코스 돌담길, 들국화길; 8코스 해맞이길; 9코스 단풍길; 10코스 노을길; 11코스 미로길 등을 말합니다. 이러한 슬로길은 '청산도 주민들의 마을간 이동로'로서, '옛길'과 더불어, 우리 청산도의 역사와 문화가 펼쳐지고 이어지는 소중한 소통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금의 등산로와 슬로길은 전해져 오는 청산팔경과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등산로 코스를 살펴 보면 도청리에서 범바위에 이르는 1-A 코스와 도청리에서 보리마당에 이르는 1-B 코스, 그리고 상서리에서 매봉산에 이르는 2코스에서 전해져 오는 청산팔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슬로길 11코스 17길은, 팔경의 현대적 의미인 그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제2의 청산팔경이라고 할 만합니다. 실제로 슬로길은 가고싶은 섬 청산도의 현재 모습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의 등산로와 슬로길은 각각 전통적 청산팔경과 현대적 청산팔경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전해져 오는 청산팔경은 지금의 등산로와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고, 제2의 청산팔경은, 만약 새롭게 선정된다면, 지금의 슬로길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
언뜻, 각 지역의 대표적인 경관자원인 팔경을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팔경이 각 지역마다 넘쳐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고 보여집니다. 그 희소성의 측면에서 대외적인 관광자원으로서의 팔경의 매력은 외려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팔경은 각 지역의 올레길, 둘레길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전국적인 걷기 열풍 속에 휩싸여 점점 잊혀져 가는 존재로도 보입니다. 우리 청산팔경도 점점 잊혀져 가는 존재일까요?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팔경의 의미를 다시 그 전통에서 찾아야 하는 시기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에 따라 유행은 변하겠지만 그 지역의 역사문화 자원으로서의 팔경의 의미는 다시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청산팔경은 결국 우리 청산도의 역사문화자원으로서 대내적인 지역 정체성 향상을 위해서라도 계속 조명되고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의견을 정리해 봅니다.
1.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 향상를 위해 전해져 오는 청산팔경의 정립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2. 정립된 청산팔경의 선정 문제와 그것을 활용하는 문제는 구분될 수 있다.
3. 대외적인 이미지 제고를 위한 청산팔경의 활용 문제는 현재의 등산로와 슬로길에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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